Loading...
글자크기조절

콘텐츠

선택

선택

    대한인국민회

    대한인국민회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 한국통신부] 에 대한 전체 17 건의 기사검색

    번호 자료명 자료내용
    1 김규식의 파리한국통신부 활동상 보고서(1919.4.10.)

    1919년 4월 10일 김규식의 파리한국통신부 활동상 보고서다. 1919년 4월 10일 상해의 현순 전보가 이곳 파리한국통신부에 도착했는데 그 내용에는 1919년 3월 1일 국내에 있는 3백만의 한인들이 대한독립을 선언했고 손병희, 길선주, 한용운 등 민족대표들은 체포되어 수감되었다고 했다. 상해에 있는 현순은 이 사실을 파리의 한인대표에게 전달했는데 한인들은 절대 독립을 원한다고 했다.

    2 파리한국통신부의 김탕이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 보낸 서한(1919.4.28.)

    1919년 4월 28일 파리한국통신부의 김탕이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 보낸 서한이다. 김탕은 최근 필라델피에서 개최한 '한인회의' 소식 전보를 받고 이를 다시 중앙총회에 보냈다. 전보 내용은 1919년 4월 16일 필라델피아에서 개최한 한인회의는 성공적으로 종결되었고, 의장인 서재필의 주재로 미국 내 각계 저명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영어로 진행된 이번 대회에서 5개의 결의문을 채택했으며 남녀 150명의 참석자들은 필라델피아의 독립기념관까지 행진한 뒤 서재필의 연설과 수상(이승만)의 독립선언서 낭독으로 마쳤다고 했다.

    3 김규식이 이대위에게 보낸 서한(1919.5.4.)

    1919년 5월 4일 파리한국통신부의 김규식이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사무장 이대위에게 보낸 서한이다. 김규식은 귀하(이대위)가 보낸 4월 1일자 편지를 받고 바로 회신하지 못했으나 보내준 신임장은 잘 받았고 중앙총회의 지원에 감사하다고 했다. 런던에 있는 장택상에게 이곳 파리로 와서 나를 도와달라고 했으나 그는 미국으로 가서 서재필과 이승만을 도와주면 좋겠다는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의 뜻을 말하고 있으니 중앙총회가 나서서 이곳 파리로 올 수 있도록 강력히 권고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승만과 서재필은 나보다 능력이 출중하고 미국에는 그들을 도와줄 사람들이 많지만 이곳 파리에는 나 혼자서 모든 것을 빠듯하게 처리해야 해서 두세 명의 인력이 더 필요한 실정이니 귀하가 나서 장택상에게 전보를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4 파리한국통신부의 활동 계획 대강과 세부 추진 계획(1919.4.)

    1919년 4월 파리한국통신부의 활동 계획 대강과 세부 추진 계획이다. 파리한국통신부는 동정과 지원을 얻기 위한 공식, 비공식의 대표단과 언론인, 정치가와 정당, 각종 사회단체에 대한 인터뷰, 선전홍보활동을 위한 조직과 선전, 한국과 중국, 극동에 대한 일본의 대외 목표 홍보, 각서 제출 등의 계획 대강을 수립하였고 이러한 계획을 추진하기 위한 세부 계획 13개를 작성했다.

    5 김규식이 이승만에게 보낸 서한(1919.5.25.)

    1919년 5월 25일 파리한국통신부의 김규식이 이승만에게 보낸 서한이다. 김규식은 이승만이 보낸 4월 20일자와 5월 1일자 편지를 받고 바로 회신을 못했지만 이제 답신한다고 하면서 먼저 이상재, 박영효, 손병희에 대한 질문에 대해 이상재와 박영효는 서울에 있고 손병희는 3.1운동으로 체포되어 수감 중인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승만이 워싱턴에 본부를 설치하고 koric이란 전보 주소를 사용한다고 했으나 이 주소가 맞는 것인지 잘 모르겠고, 워싱턴의 본부가 미주(미국, 하와이, 멕시코)를 위한 것인지 알려달라고 했다. 동양[상해]에서 오는 돈으로 지금까지 충당해 왔으나 향후 홍보활동을 개시하기 위해선 더 많은 돈이 필요하고 상해로 통신을 보내면 3, 4주가 걸려 긴급한 소통이 어려워 이번에 kokim이란 전보 주소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했다. 런던의 장택상에게 이곳 파리로 와서 도와달라고 했으나 아직까지 회신이 없고 대신 그가 미국에 가서 이승만과 서재필을 돕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라 했다. 다행히 취리히대학교에 재학 중인 이관용이 지난 1주일 동안 함께 일했는데 그는 유능한 인물이어서 한국대표단의 일원으로 공식 임명해 줄 것을 귀하(이승만)와 상해에 요청했으며 베를린에서 공부 중인 김중세에게도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아마 이곳 파리로 오기 힘들 것 같다고 했다. 파리에서 하는 일은 매우 급박하여 보다 좋은 조직을 꾸리고 싶고 잠시동안 미국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것은 소문에 의하면 1919년 9월 워싱턴에서 국제연맹 제1차 회의를 연다고 하니 그곳에서 한국문제를 호소하는 데 귀하와 함께하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라 했다. 이관용에게 파리사무소의 책임을 부여하여 제네바의 국제연맹을 대비하고자 하는데 그러한 권한을 그에게 부여하고 싶고, 이승만은 당분간 미국에서 활동하는 편이 나을 것 같으며 그런 후 동양[상해]으로 건너갔으면 한다고 했다. 윌슨과 클레망소에 보낸 귀하(이승만)의 편지를 외교적인 기술로 수정해 공식 서류형태로 만들면 좋겠고 향후 서류도 이와 같이 하되 모든 공식 서류에 상업적인 표현을 피하고 외교적인 방식으로 할 것을 주문했다. 본인(김규식)이 외무총장에 선출되었다고 하나 이만한 직책을 감당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상해로 전보했으며 지금까지 대표단의 한 사람으로 수행하는 데 만족한다고 했다.

    6 김규식이 이관용에게 보낸 서한(1919.4.)

    1919년 4월 파리 한국대표단 대표 김규식이 이관용에게 보낸 서한이다. 김규식은 스위스 취리히대학교에 재학 중인 이관용에게 파리에서 한국 독립을 위해 프랑스어와 영어로 된 팸플릿 제작과 발송, 각종 문서류 작성, 신문 발간 등 파리 한국대표단의 선전외교활동을 위해 한 학기 동안만이라도 학업을 중단하고 파리로 와 줄 것을 요청했다. 상하이와 미국에 요청해 이관용을 대표단의 공식 일원으로 임명하는 절차도 밟겠으니 이번 활동은 한국의 대의를 위한 일이라는 점을 주지했다.

    7 김규식이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 보낸 서한(1919.5.27.)

    1919년 5월 27일 파리 한국통신부 대표 김규식이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 보낸 서한이다. 김규식은 고종황제의 갑작스런 죽음과 이완용, 윤치호의 행위에 관한 귀하(이대위)의 5월 5일자 공식 서한을 통해 알게 되었고 이와 관련해 회보를 만들어 알리려 한다고 했다. 영국에서 정치경제학을 공부 중인 장택상은 이승만과 서재필로부터 필라델피아로 건너오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여권이 나오지 않아 불발될 것 같아 이곳 파리로 오라고 보낼 나의 전보도 취소할 것이라 했다. 취리히의 이관용에게 파리로 와서 도와달라고 요청한 후 그가 1주일 넘는 동안 이곳 파리에서 일을 잘 도와주어서, 이관용을 대표단의 일원으로 인정하는 신임장을 필라델피아에 요청해 달라고 했다.

    8 김규식(Chin Chung Wen)이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 보낸 전보(1919.6.23.)

    파리한국통신부 대표 김규식(Chin Chung Wen)이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에 보낸 전보다. 김규식은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가 보내준 1천 달러를 받았고 향후 본인에게로 송금해 달라고 했다.

    9 김규식이 이대위에게 보낸 서한(1919.7.28.)

    1919년 6월 28일 파리 한국통신부 대표 김규식이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 사무장 이대위에게 보낸 서한이다. 김규식은 귀하(이대위)가 5월 16일자로 보낸 1천 달러(6,250프랑)에 대해 6월 23일자 전보와 6월 30일자 편지에 알렸으니 지금 반복할 필요는 없겠다고 했다. 이관용과 장택상에 관한 귀하의 6월 20일자 편지에 대해선 워싱턴 본부와 직접 소통했으니 끝내도 좋을 것 같고, 워싱턴 본부로부터 받은 전보에 의거해 나의 원래 의도대로 8월 9일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고 장차 국제연맹에 대비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워싱턴본부와 계획적으로 추진하는 데 협조할 것이라고 했다.

    10 황기환이 이대위에게 보낸 서한(1919.8.20.)

    1919년 8월 20일 파리한국통신부 서기 황기환이 이대위에게 보낸 서한이다. 황기환은 이대위가 보내준 '한국의 조약들' 이란 책자 10부를 받고 여러 친구들과 도서관에 배포하니 좋은 정보를 담은 책이라고 많은 찬사를 받았다고 했다. 김규식이 미국으로 간 이후 이곳 파리는 홍보 일 외에 활동 반경이 좁아졌고 김규식이나 또는 누군가 파리로 와서 이곳 본부의 책임을 맡아 주면 올가을 온힘을 다해 다시 운동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한국문제를 French Chambre에 소개해 오는 9월 중순 개회하는 회기에 의제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만 아직 결정된 바는 없다고 했다. 귀하(이대위)가 김규식을 만나 유럽 정책에 대한 모든 사항을 의논하고 그 결정을 알려주면 좋겠다고 했다. 이관용은 현재 스위스에 가 있는데 8월 27일경 돌아올 것으로 보고 있으며 스위스 루체른에서 열린 국제사회주의대회에서 한국 독립을 지지한 결의문 사본을 보낸다고 했다. 일본의 선전책동을 반박하고 유럽인들에게 한국사정을 알리는 유럽에서의 활동은 너무 소중한 일이니 만약 김규식이 다시 유럽으로 오지 않는다면 이같은 일을 맡을 만한 사람을 곧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12
    1 / 2 페이지